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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성과정 === 일원상서원문은 소태산의 일원상 사상 또는 일원상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다. 소태산은 대각을 이루고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대각의 심경을 표현했다. 여기서 ‘한(一) 두렷한(圓) 기틀(相)’을 일원상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어 경축가에서 “일원대원 될 것이니 경축가나 불러보세”라 하여 일원이란 표현을 직접적으로 했다. 1918년(원기3) 10월에 방언공사 중 구간도실 상량문에 “사원기일월 직춘추법려 송수만목여춘립 계합천봉세우명(梭圓機日月 織春秋法呂 松樹萬木餘春立 溪合千峰細雨鳴)”(《원불교교사》 제2편 제4장)이라 했는데, 이 글귀 가운데 ‘사원기일월’에서 일원상의 의미가 드러나 있다. 1919년(원기4) 방언공사를 마친 후 소태산은 정산종사에게 ‘일원’을 운으로 시를 짓게 했다. 이에 정산은 ‘만유화위일 천지시대원(萬有和爲一 天地是大圓)’이라 했다(《정산종사법어》 기연편2). 그러다가 1919년(원기4) 8월 소태산은 금산사에 잠시 머무는 동안 별채 문미에 그림으로써 일원상을 표현했다(《원불교교사》 제2편 제5장). 1935년(원기20)에 《조선불교혁신론》에서 ‘등상불 신앙을 불성 일원상으로’, ‘불성일원상조성법’ 등이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불교에 대한 새 불법의 상징으로 일원상을 구상했음을 알 수 있다(《원불교교고총간》 제4권). 1935년(원기20) 8월에 인쇄된 《예전》에서 상장 시에 복표에 흑색 일원상을 그려서 왼쪽 가슴에 부착하도록 하는 조항을 둘 정도로 일원상의 표현이 일반화되어 갔다. 1937년(원기22) 4월에 발표한 송도성의 ‘신앙과 수양’이라는 글 속에서 심불일원상과 일원이라는 표현을 했다. 1937년(원기22) 9월, 하선 해제식에서 소태산은 ‘일원상을 모본하라’는 제목으로 일원상에 관련한 법어를 대중에게 처음 전했고, 동년 동월 정산은 〈일원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일원상의 진리, 일원상 신앙하는 법, 일원상 숭배하는 법, 일원상 체받는 법, 일원상 이용하는 법 등을 밝힘으로써 일원상 사상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제시했다. 1938년(원기23) 소태산은 《회보》에 ‘일원상과 인간과의 관계’라는 법설과 ‘심불일원상봉안법’이라는 규정을 발표했다. 동년 11월 동선에서 ‘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을 발표했고, 1939년(원기24) 《불법연구회근행법》에 ‘심불일원상서원문’(《원불교교고총간》 제4권)으로 발표되었다. 1940년(원기25) 《불법연구회근행법》의 ‘심불일원상서원문’이란 제목을 ‘일원상서원문’으로 고치며 일부 자구를 수정하게 되었고, 그 내용이 1943(원기28) 3월에 편수된 《불교정전》에 삽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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