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수행의 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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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수행의 요법(日常 修行의 要法)

원문[편집 | 원본 편집]

1.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2. 심지는 원래 어리석음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어리석음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혜를 세우자. 3. 심지는 원래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그름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계를 세우자. 4. 신과 분과 의와 성으로써 불신과 탐욕과 나와 우를 제거하자. 5.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 6. 타력 생활을 자력 생활로 돌리자. 7.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을 잘 배우는 사람으로 돌리자. 8.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 9.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

원불교용어사전[편집 | 원본 편집]

일상수행의 요법 (日常修行―要法) 하루 하루의 일상생활 속에서 교리를 실천 궁행하여 나날이 중생의 탈을 벗고 불보살의 인격을 이루어가는 수행법. 교리의 강령을 아홉가지로 요약했으므로 교강9조라고도 한다. 원불교의 교리는 사통 오달로 구성되어 있다. 진리는 어느 것에도 막히고 걸릴 것 없이 두루 통해 있기 때문이다. 일원상의 진리를 중심으로 사은 사요와 삼학팔조의 교리가 사통 오달로 통해 있다. 일상수행의 요법에는 원불교의 기본 교리가 다 포함되어 있다. 성현은 대자대비심으로 중생의 근기 따라 이렇게도 법을 가르치고 저렇게도 가르치는 것이다. 한 순간의 무한한 연속이 곧 영원인 것이다. 인간의 한 평생이란 하루 하루의 생활이 쌓여진 것이다. 하루 하루를 소중하고 가치있게 살아갈 때 일생을 보람있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①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定)을 세우자‥심지는 우리의 본래 마음이다. 성품의 본래 자리는 진리 그대로이다. 따라서 마음 바탕은 지극히 고요하고 지극히 맑아서 아무런 요란함이 없는 것이다. 텅비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경계에 부딪치면 사량 계교심이 생기고 삼독 오욕심이 일어난다. 번뇌망상·희로애락·원근친소·염정미추·시비선악의 감정이 모두 경계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이 어디로 도망가지 않나 항상 살피고, 사나워지려는 마음은 온순하게 길들이며, 나쁜 욕심이 일어나면 텅 비우고, 흩어지려는 마음은 하나로 집중하는 것이다. 필요없는 일에는 휩싸이지 말고, 일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굳게 지키며,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일심으로 열중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수행하면 세상 경계에 부딪쳐도 마음이 요란해지지 않는다. 천만 경계를 당해서도 마음이 끌려가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면 자성의 정(定), 곧 수양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② 심지는 원래 어리석음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어리석음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혜(慧)를 세우자‥우리의 본래마음은 요란하지도 않고 또한 어리석음도 없는 것이다. 반야의 지혜 광명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맑은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끼이면 밝은 해를 가리는 것과 같이, 현실 경계에 부딪칠 때 어리석음이 일어나서 인과보응의 이치와 불생불멸의 진리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실한 것을 놓고 허망한 것에 끌려다니며, 상생상화의 선연을 짓지 못하고 상극투쟁의 악연을 짓게되는 것이다. 진리를 늘 묻고 배우며, 인과보응의 이치와 불생불멸의 진리를 깊이 생각하고, 법동지와 더불어 의견 교환하기에 힘쓰며, 사물을 대하여 명확한 판단력을 길러가고, 아는 것을 실제 생활에 체험 활용해 보며, 본래성품이 무엇인가 연구해 보고, 맑고 밝은 정신을 키워나가면 차츰 반야의 지혜 광명이 빛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본래성품을 회복하게 되고,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을 깨닫게 되며, 천만 경계를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는 연구력이 길러지게 되는 것이다. ③ 심지는 원래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그름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계(戒)를 세우자‥우리의 본래마음은 요란하지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선악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경계 속에서 정의를 버리고 불의에 굴복하기 쉬우며, 복 받기를 원하면서도 죄받을 일을 하고, 즐겁기를 바라면서도 괴로움 속으로 빠져 들어가며, 성공할 일을 버리고 실패할 일을 하게되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계문을 지키기에 노력하고, 욕심과 충동을 억제하며, 모든 행동을 조심하고, 나쁜 습관을 참고 끊으며, 어느 한 편에 치우치거나 집착하지 않고, 불의에 굴하지 말고 정의를 실천하며, 과불급이 없는 중도행을 하기에 노력하면, 천만 경계 속에서도 마음이 바르게 되고 행동이 정당해져서 항상 정의롭고 정당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일상수행의 요법 1조·2조·3조는 삼학 수행에 해당된다. ④ 신과 분과 의와 성으로써 불신과 탐욕과 나와 우를 제거하자‥4조는 팔조 수행에 해당된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갖추고 있으므로 삼학 수행을 통해서 반드시 성불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생명을 걸고서라도 생사 해탈 공부를 성취하겠다는 용맹 정진심으로 단호히 악업을 끊고 선업을 쌓아가며, 인과보응의 이치와 불생불멸의 진리 그리고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에 대해서 큰 의심을 일으키어 깨치기에 노력하고, 삼학 수행에 백절 불굴의 정성으로 노력해 가는 것이다. 이와같이 신과 분과 의와 성이 확고해지면, 불신과 탐욕과 나와 우는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 이와같이 하루 하루를 삼학 팔조의 수행을 표준으로 살아가면 즐겁고 보람있는 하루 하루가 되는 것이다. ⑤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원망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불평 불만과 고통에 허덕이고 인생을 비관하기 쉽다. 감사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이 조항은 사은에 대한 보은 감사생활을 강조하는 것이며, 사대강령 중에서 지은 보은의 생활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존재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며, 우주 만물은 서로 은혜의 관계로 맺어져 있는 것이다. 상극 투쟁의 세계는 은혜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일시적·부분적 현상일 뿐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는 모두가 사은의 은혜로 인한 것이다. 모든 사물에 은혜를 발견하여 감사 보은의 생활을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다운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인 것이다. 1조·2조·3조·4조로 잘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사 보은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삼학 팔조의 수행을 잘 한다면 누구나 감사 보은의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감사 보은 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삼학 팔조의 수행도 잘 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고, 일원상의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되는 길은 삼학 팔조의 수행과 사은 사요의 신앙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천지은을 발견하여 모든 일에 응용 무념의 생활을 하고, 부모은을 발견하여 무자력자보호에 힘쓰며, 동포은을 발견하여 자리이타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법률은을 발견하여 계문 엄수와 법규 준수의 생활을 해가면, 일상생활 속에서 보은 감사의 생활을 하게 된다. ⑥ 타력생활을 자력생활로 돌리자‥자력양성의 공부로 의뢰생활이나 빚 지는 생활에서 벗어나, 내 인생을 내 스스로 개척해 가고, 창조적 삶 주체적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 인생의 창조적 주체자이다. 노약자나 병약자가 아닌 이상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의 인생을 개척하고 창조해 가는 것이다. 자력생활은 사은에 대한 보은 감사의 생활이요, 불공하고 봉공하는 생활이며, 창조하고 발전해 가는 생활이다. 타력생활은 사은에 대한 배은의 생활이요, 빚 지고 의뢰하는 생활이며, 발전과 희망이 없는 노예의 생활이다. 인간 사회의 진정한 평등은 자력양성에서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 평등이 보장되어 있다 할지라도 자력생활을 하지 못하면 종속생활·노예생활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⑦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을 잘 배우는 사람으로 돌리자‥잘 배울 줄 아는 사람은 항상 발전하고 진급한다. 배울줄 모르는 사람은 퇴보하고 강급한다. 인간이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사람도 어릴 때부터 짐승속에서 키우면 짐승같이 자라게 된다. 배움을 통해서 사람다워 질 수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배우고, 사회에서 배우고, 자연을 통해서 배우고, 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이와같이 배움은 끝이 없는 것이다. 평생을 통해서 배움을 놓을수가 없는 것이다. 배움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빈부귀천도 없고 자존심이나 나태심에 얽매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학식의 스승에게서는 지식을 배우고, 도덕의 스승에게서는 진리를 배우며, 생활의 스승에게서는 삶의 체험을 배운다. 자연현상이나 삼라만상으로부터도 배우고, 역사적 사건에서도 배우는 것이다. ⑧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표리의 관계이다. 배우기만 하고 가르치지 아니하면 세상은 발전하기 어렵고, 가르치기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자신이 발전하기 어려운 것이다. 잘 배워야 잘 가르칠 수 있고, 잘 가르쳐야 잘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나와 가까운 인연 뿐만아니라 남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장학사업·육영사업으로 가르치기에 힘쓰면 세상은 더욱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⑨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개인의 이익보다 전체의 이익을 앞세워야 개인이 잘 살되 전체와 함께 잘 살게되는 것이다. 공익심이란 개인적 사리사욕 추구에서 벗어나 사회·국가·세계 등 전체 인류의 이익을 앞세우는 마음이요,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발견하여 헌신 봉공하는 마음이다. 공익심을 많이 가진 민족일수록 문화민족이요 선진국을 건설하게 된다. 공익심은 개인을 구제하는 길이요, 사회·국가·세계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며, 모든 인류가 함께 잘 살게되는 마음이다. 일상수행의 요법 6조는 자력양성이요, 7조는 지자본위이며, 8조는 타자녀교육이요, 9조는 공도자숭배이다. 따라서 사요의 실천이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원불교인은 하루 하루의 생활 속에서 삼학 팔조의 수행과 사은 사요의 신앙생활 속에서 일원상의 진리를 깨쳐가고 체험해 가도록 끊임없이 수행정진하는 것이다.